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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64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고 복잡한 경위가 있습니다. 미국 육군은 1960년대에 확대된 베트남 전쟁에서 게릴라를 제압할 강력한 무장 헬리콥터를 원했습니다. 당초에는 UH-1 휴이에 기관총이나 로켓을 장착해서 사용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한 화력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1964년에 공격 헬리콥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AH-1이라는 헬리콥터가 탄생했지만 이를 뛰어넘을 헬리콥터를 원한 미국 육군은 1976년 12월 10일에 휴즈사의 YAH-64A를 선정했습니다. 이후 1982년 YAH-64A의 양산화 계획이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게 됩니다. 시제기를 뜻하는 Y를 배고 AH-64A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됩니다.

1984년부터 육군에 양산형을 인도하기 시작해서 운용시험과 승무원 훈련을 마친 후 1986년 7월에 제6기병연대 제3대대에서 운용을 시작합니다. 그 후 AH-64는 유럽의 미군에도 배비하여, 냉전 말기에 바르샤조약기구군에 대항하여 서유럽 방위의 일익을 담당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파나마 상공을 날고 있던 아파치 헬기


최종적으로 미국 육군은 AH-64A를 821대를 조달했고 1984년부터 1997년까지 중동 여러 국가와 그리스에도 수출해서 총 937대를 제작합니다. 아파치 헬기는 1989년 12월에 최초로 실전에 투입됩니다. 파나마에서 있었던 저스트 코즈 작전입니다. 미국 공군의 C-5 수송기로 파나마로 운반하여 비밀리에 작전을 실행했고 훗날 보고에 따르면 임무 성공률은 80%에 달하였습니다.

첫 번째 작전도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파치 헬기를 전설로 만든 작전은 바로 두 번째 작전 걸프전쟁에서의 사막의 폭풍 작전입니다. 아파치 헬기의 생산량 중 수출품을 제외한 821대에서 227대라는 4분의 1을 투입한 작전이였습니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섬멸, 격퇴하고 쿠웨이트를 해방하는 것이 목적인 작전이었습니다. 미국 육군은 전쟁 중 여러 종류의 헬리콥터 1,193대를 투입했는데 그중 227대가 AH-64A 아파치였습니다. 

AH-64A의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지에서 발진했고 이라크군의 차량 500대, 장갑 차량 500대, 대공화기 진지와 참호 65곳, 항공기 10대, 헬리콥터 12대를 지상에서 격파하는 어마어마한 전과를 기록합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개전을 선언하기 직전에 다국적군이 공중작전을 원할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AH-64A를 투입하여 심야에 이라크의 방공설비를 파괴합니다.

이는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작전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자면, 공군의 MH-53J 페이브로 특수전 헬리콥터로 육군 제101공정사단 제1대대의 AH-64A를 공격 표적 근처까지 선도했습니다. 국경을 넘어 목적지까지 편도 90분의 거리를 비행했습니다. 경로상에 재보급지점을 설정하지 않고 보조연료탱크 1개, 로켓 포드 1개, 헬파이어 8발을 장비하고 작전했습니다.

AH-64A 4대와 MH-53J 2대가 1월 17일 오전 0시 56분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지를 이륙, 이어서 다른 5대도 이륙하였고 고도 15m, 220km/h 속도로 작전지역으로 나아가서 표적의 약 20km 앞에서 대기했습니다. 오전 3시에 다국적군 사령관 호너 중장이 공격명령을 내리자, 오전 3시 27분에 이라크군 레이더 진지 2곳을 헬파이어로 파괴합니다. 

기습작전의 성공이였고 적군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였습니다. 그전까지 헬리콥터는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아파치 헬기가 등장하고부터는 대규모 작전에서도 보조 개념이 아닌 주력 화력으로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걸프작전에서의 성과로 AH-64 헬기는 세계 최강의 헬리콥터가 되었고 다양한 개량으로 현재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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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이아빠 2018.09.12 11:34 신고

    니콜라스케이지 아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