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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전략정찰부대를 비밀리에 운용하던 CIA는 스컹크 웍스에 정찰기를 의뢰합니다. 의뢰를 받은 스컹크 웍스는 켈리 존슨 부사장의 주도 아래 공격적인 설계안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고고도 정찰기 U-2의 개발자이기도 한 존슨 부사장은 U-2 한계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음속의 몇 배로 비행할 수 있는 고고도 정찰기가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컹크 웍스가 제시한 총 12개의 설계안 가운데 최종 설계안인 A-12가 채택되었고 CIA는 12대의 A-12 옥스카트를 록히드 마틴에 주문했습니다. A-12가 한창 개발되던 1960년 5월 1일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 대위가 조종하던 U-2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사건으로 미국과 소련은 자국 상공에 상대국 유인항공기가 비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협약을 맺기 이릅니다.

협약이 체결되자 새 정찰기 사업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켈리 존슨 부사장의 강력한 피력으로 사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그 후 2년 후인 1962년 A-12는 초도비행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렇게 인류 최초로 마하 3.2라는 경이적인 속도를 내는 초음속 정찰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실전배치가 이루어진 것은 1967년 5월, 3대의 A-12가 블랙실드 작전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어 일련의 비밀정찰임무를 수행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정찰임무에서 A-12는 북베트남 상공을 마하 3.1의 속도로 비행하면서 대공 미사일 기지를 포함한 주요목표를 촬영합니다.

블랙실드 작전을 통해 A-12는 수많은 비밀정찰임무를 수행했고 그 대상은 주로 북베트남, 라오스, 북한 등의 적대국가들이었습니다. 특히 1968년 1월 23일 북한이 동해상에서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를 납치하자 A-12는 원상항을 포함한 북한의 주요군사시설을 정찰했고 당시 북한은 초음속 정찰기를 잡을 능력이 없었기에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해야했고 기동 소음이 꽤 컸기에 북한 전역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SR-71과 A-12 정찰기


A-12는 1968년 5월 8일 북한 정찰을 마지막으로 총 29회 비행한 블랙실드 작전을 종료하면서 퇴역했습니다. 그 이후 A-12를 개량한 SR-71이 대신하여 정찰 임무를 계속 수행하게 됩니다. 원래 미공군은 A-12의 성공에 크게 기뻐하며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해 A-12를 바탕으로 개량한 F-12B 초음속 요격기나 B-70 초음속 폭격기를 꿈꾸었으나 결국 실전배치 된 것은 A-12의 공군정찰기형인 R-12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여담으로 오키나와에 전진 배치된 A-12와 SR-71은 특이한 별명을 얻었는데 "하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하부는 오키나와에 출몰하는 독사인데 다소 특이한 모습의 SR-71를 보고 현지인들이 붙인 별칭이었습니다. 이후 A-12나 SR-71의 조종사도 이 별명을 즐겨 사용했고 심지어 이 명칭을 새긴 부대마크까지 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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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겔 2017.10.26 14:56 신고

    두려움에 떤다니 어이없는 .....
    이 비행기로 북한을 전투불능이나 전멸을 시킬정도로 수십대를 동시에 보낼수없다면 무조건 미군이나 남한이 지는 전쟁이다
    그 이유는 북한의 전투력배치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안다

    • 쏘갈 2017.10.27 17:02 신고

      그당시에는 소음만 들렸지 전투기인지 정찰기인지 모르니깐 그럴수도 있죠....

  2. 누구세요? 2017.10.27 03:31 신고

    말하는걸 보니 그런걸 아시나본데 남파간첩이세요? 북한이 아무리 비대칭전력이 많아도 질에서 떨어지는데 뭘 믿고 남한이 진다는 건지 ㅋㅋㅋ

  3. 족까 2017.10.27 07:24 신고

    시겔 간첩이네

  4. 온달왕자 2017.10.27 08:45 신고

    80년대 후반 서울 상공에서도 블랙버드 날아다녔죠. 오산, 혹은 오키나와중에서 출격한거 같은데 한밤중 자고있으면 천둥소리에 집이 흔들렸었는데 그게 나중에 알고보지 블랙버드였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