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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러시아 연방의 전·현직 대통령이자 총리로 1999년 12월 31일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이래 2017년에 이른 현재까지 총 18년에 달하는 기간동안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입니다. 푸틴은 2013년부터 4년 연속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세계적 영향력이 강한 것도 있고, 상대에게 자극을 주는 성격이라 일부러 다른 나라 VVIP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중요 자리에도 수시로 늦는 등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예의 없는 행동들을 합니다. 

작년 12월에는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남을 앞뒀으면서 2시간을 지각했고 과거 일본이 선물로 보내준 대형견을 데리고 나왔고 일본 기자는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일본에 압박을 가한 행위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라고 되려 일본 장관이 푸틴을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국민 대다수는 이런 강경하고 거친 모습의 푸틴을 좋아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밀리지 않고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푸틴에 대한 지지는 엄청난 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찬양 받던 푸틴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푸틴이 처음으로 비난 받은 세계 해군 역사에 남을 비극, 원자력 잠수함 침몰사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2000년 8월 12일 토요일.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소속 오스카급 핵잠수함 쿠르스크 함이 바렌츠 해에서 군사 훈련 중 침몰했습니다. 당시 쿠르스크 함은 북방함대 기함인 키로프급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 함을 향해 두 발의 모의 어뢰를 발사할 예정이었고 오전 11시29분 잠수함 함수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어뢰 덮개 등을 날려버렸습니다. 2분15초 뒤엔 이보다 더 큰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 폭발로 선체엔 2㎡의 구멍이 뚫렸습니다. 길이 154m, 3층 높이에 배수량 13,400t인 쿠르스크는 1,000m 수심 해저에서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었지만 격실들로 물이 초당 9만ℓ씩 쏟아져 들어왔고 선체는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108m 해저로 가라앉았습니다.

사고 당시 폭발음은 훈련 함선들이 감지하였으나 훈련에 따른 폭발음으로 여겨 보고하지 않았고 당일 저녁이 되어 쿠르스크로부터 응답이 없는 것을 염려하기 시작했고, 거듭된 교신 실패로 늦은 저녁에는 수색 구조 작전이 발령되었습니다. 사고 다음날인 13일 아침 파손되어 가라앉은 쿠르스크의 선체가 발견되었고, 잠수함 해난 구조기술에 있어서는 서방국가가 앞선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지원을 거절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과거 냉전 상대였던 나라에 도움을 받는다는 국가적 자존심 문제였을 수도 있고, 혹은 신형 오스카 급 잠수함을 타국에 내보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간에 러시아의 장비와 기술로는 악천후와 온도를 극복할 수 없었고, 이는 귀중한 초동대응 시간을 허비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 인양 구조 작업


이러한 러시아 측 태도에 대해 생존자가 있음에도 구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고 사고 다음날인 13일 러시아 해군의 해난구조함 프리즈 함이 쿠르스크 함의 9번 격실 탈출해치에 도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악천후를 이유로 시도를 하지 못했고, 금요일에는 도킹을 했으나 여압에 실패합니다. 러시아는 16일이 되서야 영국과 노르웨이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이들 구조대는 17일 노르웨이를 출발해 19일 현장에 도착했으며 20일에는 심해잠수사들이 탈출해치에 도달했지만, 그 때는 이미 9번 격실이 침수된 후였습니다.

▲침몰 직후, 생존해 있던 승조원이 남긴 메모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 승조원 118명 대부분은 폭발과 함께 순직했지만 함 후미에 23명의 생존자가 있었고 100미터 정도는 구조가 가능한 수심이었기 때문에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그들은 모여서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부검 결과 이들은 사고 후에 최고 8시간 정도 생존해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결국 러시아 정부와 푸틴의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전부 순직했습니다.

이 후 푸틴과 러시아 해군은 가족들에게도 냉담했는데, 처음엔 언론을 통해 잠수함에 ‘경미한 기술적 문제'가 있다고 밝히며 말을 아꼈고,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밝혀내라 재촉하는 유가족들을 몰아내기도 합니다. 덕분에 착잡한 장면 여럿이 나왔는데, 한 예로 8월 18일 쿠르스크 함 승조원 세르게이 대위의 어머니는 쿠르스크의 운명에 관한 뉴스 브리핑을 듣던 중 공황에 휩싸였다 안정을 못 찾자 간호사가 진정제를 강제로 주사해 데리고 나가는 장면도 매스컴에 공개되어 러시아 정부에 대한 비난의 불길은 가속화 됩니다.

 

쿠르스크의 선체는 2001년 네덜란드의 인양업체에 의해 절단작업 후 대부분이 인양되어 로슬랴코바 해군기지로 운반되었습니다. 총 94구의 시신이 인양되었고 그 중 3구는 화재로 훼손이 심해 신원확인이 불가능 하였습니다. 함장을 포함한 31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군 국립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쿠르스크의 모항 자파드나야 리츠카에 세워졌습니다. 원잠 침몰 사실은 러시아 정부나 언론이 아닌 서방 소식통들을 통해 먼저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끌던 당시 러시아 정부는 사고가 나자 쉬쉬하기에 바빴고 러시아 정부는 사건이 보도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침몰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취임 100일 전야에 대형 악재를 만난 푸틴은 자국 군인들의 생명보다 위신을 챙기려다 최악 참사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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