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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의 순잠 을형(巡潜乙型) 잠수함 I-33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6월 10일, 미쓰비시 조선의 고베 조선소에서 준공한, 해상 정찰기를 탑재할 수 있는 3600톤의 나름 신예 대형 잠수함이었습니다. 본 잠수함은 오가와 쓰나요시(小川綱嘉) 중좌를 함장으로 동형함인 I-31, I-32와 함께 야마자키 시게아키 소장의 제 1잠수함대 제 15전대에 배속되어 같은 해 8월, 구레 군항을 떠나 과달카날 전투가 한창이던 솔로몬 군도에서 1개월 가량 초계 임무에 종사했습니다.

▲I-33의 어뢰실


이후 이 잠수함은 9월 25일, 초계 임무를 종료하고 당시 일본 해군의 전진 기지였던 트럭 섬에 입항했으며 이날 승조원의 절반에게 외출이 주어졌고 다음날 이른 아침, 단기 수리를 위해 제 6함대 공작함 우라카미마루의 현측으로 이동, 정박했습니다. 이때 남은 승무원과 공작선에서 건너온 엔지니어 3명은 잠수함 최하부의 6번 어뢰 발사관 수리를 시작했고 이 작업과 동시에 밸러스트 탱크의 주 배수 시험을 실시하자마자 갑자기 함이 균형을 잃었으며 열려있던 해치로 급속도로 해수가 유입, 순식간에 침몰하며 함에 남아 있던 항해장과 승무원 33명은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사망했습니다. 단순히 어뢰 발사관 수리 시도를 했을 뿐인데 잠수함 한 척이 통째로 가라앉은 것입니다.

▲당시 실제 인양모습


당시 바다의 수심은 33미터로 얕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출 작업은 포기되었고 침몰 후 33일이 지난 후 신형 잠수함을 포기 할 수 없었던 일본 해군에 의해 잠수함 인양이 이루어졌습니다. 1943년 3월에 구레 해군 공창으로 견인된 I-33은 신형 레이더 장착 작업과 배터리를 교환하고 엔진 정비를 실시한 다음, 6월에 실전 부대에 재편입되어 새로운 승무원에 의한 학습 훈련이 이루어졌습니다.

1944년 6월 13일, 새로이 함장으로 부임한 와다 츠요시 소좌는 인수 작업을 완료한 다음 잠수 시험을 위해 항구를 빠져나갔고 두번째 급속 잠항을 명령한 순간, 수중에 표류중이던 나무 조각이 유입 밸브에 끼어 밸브가 닫히지 못하면서 밸러스트 탱크에 침수가 발생, 수심 60 미터에 또 다시 침몰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해저에 착저한 함내에서는 승조원 전원이 함을 복구하기 위해 달라붙었지만 끝내 부상하지 못했고 산소가 떨어져가고 함내의 압력이 높아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수심 60미터의 해저에서 해치를 열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승조원 중 달랑 2명만이 탈출에 성공 할 수 있었고 곧바로 굉장한 기세로 해수가 함내로 유입되며 와다 함장 이하 92명이 사망했습니다. 한번은 수리 때문에, 인양해서 개량 작업 이후에는 나무 조각 때문에 두번의 침몰을 당한 이 잠수함 사건 이후, 일본 해군 잠수함 부대에서는 이 잠수함의 이야기는 저주로 생각하고 왠만해선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함 번호에 "3"이 붙는 함을 일본 해군 잠수함 승무원들은 꺼려했고 이는 약 6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함 내에서 발견된 승조원의 유서


이 잠수함의 저주는 끝이 아닌데, 전쟁이 종결되고 8년이 지난 1953년 7월, 다시 이 잠수함이 유족들과 일부 인사들의 결의로 인양되었고 그렇게 인양된 I-33 함내에서는 다수의 유서와 편지도 발견되었지만 사망한 승조원들이 남겨놓은 글 중에는 밸브 개폐부 등 쓰레기 일본 잠수함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항의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유족이 모여 합동 장례식이 열린 다음 이 잠수함을 히타치 조선에서 해체 처분하기로 하였는데 이때 마지막 일본 제국 해군의 잠수함을 보려고 많은 구 일본 해군 및 자위대 관계자가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구 일본 해군 기술 장교 3명이 침수되지 않았던 어뢰실을 견학하려고 어뢰실에 들어간 순간 마지막 참극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밀폐된 공간에 남아있던 가스에 중독되어 전원 사망하고 맙니다. 이 잠수함에 대한 3의 저주는 당시 일본 언론에 대서 특필 되었습니다. I-33의 제작사는 미츠비시였으며 미츠비시는 한자로 "三菱"이며, 처음으로 침몰시 잠수함을 고치려고 했던 엔지니어도 3명이였으며, 처음 침몰 시 사망했던 승무원 숫자도 33명이였고, 당시 바다의 수심도 33M였으며 침몰 후 33일이 지난 후 잠수함 인양이 이루어졌으며 마지막 사망했던 기술 장교도 3명이였습니다. 억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소름 돋는 일본 잠수함의 3의 저주에 일본 해군은 현재까지도 3이라는 숫자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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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엔터프라이즈 2017.04.19 17:20 신고

    위 내용은 3의 저주라기 보단, 전범국 일본이 죄값을 받는 것 같고, 전범기업 미쯔비시의 기술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매국기업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게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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