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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생아 출신이지만 일국의 정상까지 올라 한 나라를 좌지우지 했던, 한 때는 미국을 위해 일했지만 미국에 의해 몰락한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의 일생과 함께 단 한명을 잡기 위해 2만여명과 함께 당시 첨단 무기를 도입했던 파나마 침공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마누엘 노리에가는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나 1969년 장군 오마르 토리호스의 군사쿠데타 후 군정보부사령관에 취임했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훗날 미국에 축출되는 노리에가는 냉전 때인 1966년부터 CIA를 위해 일했었다는 사실인데 노리에가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CIA국장이던 시절부터 그 앞잡이로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 등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좌파정권 교란에도 협력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마약대책에도 협력하여 이러한 업적으로 1978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의 마약단속국(DEA)로부터 매년 감사장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1981년 대통령이자 파나마의 독재자인 오마르 토리호스가 비행기사고로 사망하자 실권을 장악하고 1983년 군최고사령관이 되었고 3년 후인 1984년 16년 만에 직선제에 의하여 당선된 대통령 바를레타와 1985년 그를 계승한 대통령 델바에 위에 군림하면서 파나마를 좌지우지 했습니다. 이 권력을 바탕으로 콜롬비아 마약밀매조직이 파나마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것을 용인하기도 했으며 대외적으로는 민족적 반제국주의적 외교정책을, 안으로는 군부독재체제를 추구, 집권 이래 줄곧 미국 정부와 끈질긴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병력도 마음대로 사용했는데, 파나마 최대의 정보기관인 G2 사령관 출신이기 때문에 그는 1만5천명 규모의 파나마 국방군의 무력을 가질 수 있었고 야당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국민들의 불만을 샀으나 무력 덕분에 독재체제는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8년 국내외에서 그의 비리에 대한 폭로가 계속되어 그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 미국 법무부가 그를 마약밀매혐의로 기소하자, 미국을 감당하지 못한 대통령 델바에는 노리에가를 해임했습니다.

 

▲ 당시 파나마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아파치 헬기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의회는 오히려 대통령 델바에를 축출하고 노리에가를 국가 수반으로 추대함으로써 그의 찬반세력 간에 대결이 심화되었고 결국 1989년 12월 미국은 전면적인 파나마 침공을 단행했습니다. 12월 20일, 미국에서는 새벽에 전격적으로 파나마를 공격하였고 미국에서는 파나마 주둔 미군에 더하여, 미국 본토에서 9500명의 해병대, 육해군을 추가 동원하였습니다. 침공에 동원된 미군은 2만 1천여명이며 미국은 파나마가 작은 나라라고 얕보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를 하여 공격했는데 F-117 스텔스 전투기, AH-64 아파치 공격헬기 등 당시 최신 장비까지 동원하였습니다. 파나마 침공은 F-117의 최초 실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노획한 파나마 국기를 들고 있는 미군들


당시 파나마 군은 1만 5400명, 장비나 병사의 질 또한 미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 시티는 순식간에 함락되었고 미국은 이전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해졌으나, 노리에가가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여 집권 기회를 놓쳤던 기예르모 엔다라를 수반으로 하는 친미 정권을 승인하고, 기존에 발효했던 대 파나마 경제제제를 모두 해체하였습니다. 마누엘 노리에가는 국영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 참호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독전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고 3일간 파나마 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노리에가가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피하면서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당시 노리에가가 피신한 교황청 대사관 앞을 지키는 미 육군 델타 대원들


미국이 노리에가의 제거에 나섰던 것은 CIA의 하수인이었던 그의 마약거래자금이 미국의 니카라과 우익반군 지원사업(소위 이란-콘트라 사건)과 연관되어, 이를 빌미로 노리에가가 미국의 약점을 잡아서 부시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1989년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하여 체포, 미국으로 압송되었는데, 이때 노리에가는 미군에게 잡히기 전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었고 그러자 미군은 그를 항복시키기 위해서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장갑차를 가져다놓고 공회전을 시키고, 대사관 옆 공터를 밀어서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만들고, 24시간 내내 헤비메탈, 록 음악들을 대형 스피커로 틀어대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1월 3일, 노리에가는 밤 8시 50분에 교황청 대사관에서 걸어나왔고 당시 목격자들은 노리에가가 장군복 차림에 수척한 모습으로 대사관에서 걸어나와 미 마약 단속국(DEA)요원들에게 체포되었고, 헬리곱터에 실려 미군 기지로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노리에가가 자발적으로 미국에 투항하였다고 밝혔으며, C-130 수송기로 플로리다로 이송되어 마이애미에서 마약밀매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밝혔으며 미군에 연행된 노리에가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재판을 받고, 마약거래, 마약조직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40년 형의 실형 판결을 받고 미국의 형무소에서 복역하게 됩니다.

이 파나마 침공에서는 23명의 미군이 희생되었으며, 전쟁 비용으로는 1억 6360만 달러를 치뤘고 노리에가를 압송하고 재판하는데는 2천 3백만 달러가 소모되었으며 1992년 발표된 미 하원의 발표에 따르면, 파나마 정규군 전사자는 65~70명이며, 민간인 피살자는 230명 이상, 행방불명자는 약 70명이며 민간인 피살자의 대다수는 약탈자 혹은 노리에가의 비정규군 소속 대원이었으나, 무고한 구경꾼도 60~86명이 끼어 있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노리에가 정권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파나마에는 기예르모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지만 이후로도 파나마는 오랫동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게 됩니다. 유엔에서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체택되었고 1992년 6월 11일, 부시 미 대통령은 파나마를 방문하여 연설을 하려 했으나 갑자기 성난 군중 수천명이 몰려와서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노리에가는 2011년 12월 11일 조건부 석방되어 고국으로 송환되었지만, 파나마에서 따로 정적 살해죄 세 건으로 최소 20년, 최대 6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복역 중이지만, 건강 악화로 수감 생활은 1년 남짓만 하고 현재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게임속에 등장한 노리에가


그러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 자신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자, 2014년에 이를 두고 본인의 허락 없이 이름을 사용하였다며 액티비전을 고소했고 바로 패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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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췍췍 2017.04.10 15:14 신고

    김정은이도 조만간

  2. 이동통신종사자 2017.04.10 17:56 신고

    남의 땅을 밥 먹듯이 불법적 무력 침공을 하는 진정 깡패국가는 미국

  3. 뭘묻고그래 2017.04.10 22:42 신고

    이런 미국이 북한에 선제 공격한다고? 대한민국에 미국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 미국인들 선제공격전에 출국 가능함?? ㅋㅋ 어이가 없죠 그쵸? ㅋ

  4. 2017.04.11 00:24

    비밀댓글입니다

  5. Aa 2017.04.11 03:56 신고

    그 깡패국가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거지처럼 살고 있을껄?

  6. ㅅㅍㅅㅌ 2017.04.11 15:22 신고

    우리를 거지구덩이에서 구해줬다고 살인자가 용서가 되고나 깡패가 의인이 되는건 아니란다...

  7. 사드 2017.04.30 09:10 신고

    그걸 노리는거지. 안타깝지만 그렇게 노예가 되어가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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