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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45년 7월 25일,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 투하를 승인했습니다. 이 명령은 괌에 주둔한 제 20 항공군 사령부에 1945년 8월 3일 이후 날씨가 허락되는 대로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중 하나의 목표에 첫 번째 특수 폭탄을 육안 확인 하에 투하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은 미 육군 항공대는 자신들이 이제 원자폭탄이라는 괴멸적인 병기를 수중에 넣었다는 걸 충분히 확인했고, 이제 우리들이 이런 걸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일본인은 빨리 항복하라"는 자세로 일본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원폭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지옥이 되던 말든 여전히 미 육군 항공대의 B-29들은 대규모로 일본 본토를 박살내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미 제 21 폭격단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 소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르메이 소장은 재래식 공습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원폭 따윈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었고, 거기에 더해 자신들이 죽도록 고생해서 이제 구체적인 성과들을 보여주려고 할 때, 갑자기 나타난 티베츠와 원폭 부대, 그리고 윗선에서 떨어진 특별 우대 지시 따위는 더욱 탐탁치 않았습니다. 그는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20일에 열린 기자 회견에서 "전쟁은 소련의 참전이나 원폭이 없었어도 그 시점에서(원폭투하 시기) 2주 이내에 끝났을 것이다. 원폭 투하는 전쟁 종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원폭부대는 원폭부대고 우리는 폭격부대라며 르메이 휘하 B-29 폭격기 부대는 자신들의 성과를 다했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945년 8월 2일 : <도야마 대공습> B-29 폭격기 170기가 도야마를 공습해 시가지의 대부분 약 25,000채의 건물이 소실되고 사망자 3,000명, 이재민 약 11만 명이 발생. 원폭을 제외하고 지방 도시로서는 최대 피해.

8월 5일 : B-29 폭격기 92기가 군마현 마에바 다카사키(高崎)를 공습. 사상자 1,323 명.

 

8월 6일 :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7일 : 원폭 투하 다음 날. 아이치 현 토요에 위치한 일본 해군 공창에 대한 대규모 공습. 사망자 2,477 명.

8월 8일 : <후쿠야마 대공습>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에 B-29 폭격기 91기를 동원해 공습. 당시 시민의 82%에 해당하는 약 47,000명이 이재민이 되었고 사망자 354명, 소실 가옥 수 약 1만 채.

 

8월 9일 : 나가사키 원폭 투하

8월 10일 : 이와테 현 하나마키, 규슈 구마모토 공습.

8월 11일 : 후쿠오카 현 쿠루메 공습. 사망자 212명, 소실 가옥 4,506채.

8월 14일 ~ 15 일 : 일본 정부가 무조건 항복을 결정한 8월 14일부터 다음날인 15일 새벽까지 일본 도시에 대한 마지막 공습을 감행. B-29 폭격기 145기를 동원, 오사카를 공습. 사망자는 500명에서 600명으로 추정

이후 B-29 폭격기 100여기, 아키타를 급습. 당시 일본에 유일하게 폭격을 피해 온전히 남아있는 정유 공장이었던 일본석유 아키타 정유소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공습으로 사망자는 250명 이상.

그 이후 B-29 폭격기 80기, 사이타마현 쿠마가야를 공습, 시가지의 70%가 소실되고 사망자 266명이 발생했고 마지막으로 B-29 폭격기 84기, 군마 현 이세사키와 주변 지역을 공습. 시가지의 약 40%가 소실되고 사망자는 29명, 약 2,000 가구가 화재로 소실. 이 이틀 간, 엄밀히 말하자면 7시간에에 걸친 공습에 적어도 2,3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렇듯 르메이 소장은 원폭이 떨어지든 말든 자신들의 임무를 다했고 그 결과 전쟁을 지지하던 일본인 1만명 이상이 그의 폭격기 부대에 사라졌고 시가지의 피해는 통계낼 수 없을정도로 몇만개의 집들이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르메이는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대한 폭격에 도덕적으로 가책을 받진 않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답은 예스다. 군인은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측면을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 자체가 모든 도덕적인 것들에 반하는 행위다. 따라서 그때 내가 골머리를 썩고 있던 것은 전쟁을 끝낼 수 있느냐, 없느냐 였지, 일본인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패했으면 나는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승자가 되었다.”

 

또 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if you kill enough of them they stop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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