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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누구나 아시다시피 여러 사람들의 모함과 질시, 부모와 자식의 죽음, 비인간적인 처우, 극한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 등 온갖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초인에 가까운 정신력과 전술, 전략적 능력을 발휘하며 국가와 민족을 수호해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적국이었던 일본에서조차 사후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는데요, 이런 문무를 갖춘 신하를 왜 그 시대의 왕인 선조는 중용하지 않고 경계했던 것일까요? 오늘은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했던 이유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선조의 콤플렉스

선조 그의 성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그의 가계도는 아주 좋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조선은 건국이래 13대 왕 명종까지 모두 왕과 왕후에서 태어난 적통 출신이었습니다. 비록 성종이 세조와 정희왕후의 장남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기는 했으나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며 이 역시 적통이라 할 수 있었지만 선조는 달랐습니다.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가 낳은 덕흥대원군의 아들로 사실 왕권과는 거리가 먼 방계승통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종이 후사 없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 명종은 자신이 좋아했던 이복동생인 덕흥대원군의 아들 중 셋 째 아들인 하성군을 후계자로 지명하니 이가 바로 조선 제 14대 왕 선조입니다. 즉 왕위에 올랐을 때부터 왕권과는 전혀 상관 없는 왕족이 왕위에 올랐으니 선조 스스로도 당당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방계승통이란 컴플렉스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율곡이이와 류성룡>


2. 자신에 비해 너무나 뛰어난 신하들

선조 연대에는 유능한 신하들이 많았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선조를 왕으로 추대한 이준경을 비롯하여, 이항복, 이덕형, 류성룡,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이산해, 이원익, 정탁, 권율 등이 삼정승을 지내면서 선조를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자신이 가지는 이런 하자 때문에 어느 신하든 굳건히 믿지를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하자로 인한 역신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신하들을 대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선조는 문신으로서는 드물게 탁월한 군사지식과 경륜을 가진 서애 류성룡을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기용하여 전란의 전권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3. 당시 왕보다 더 칭송 받은 구국 영웅들

임진왜란과 정류재란(1597)을 통해 일병은 결국 자신해서 한반도에서 물러났습니다. 다시말해 전쟁에 져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선조는 남모르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즉 전쟁이 국왕인 자신의 주도로 전개되지 않았고, 자신은 수도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을 갔고, 만주로 망명하고자 명국에 교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주인 왕인 당신한테 너무나 굴욕적인 순간이었던 것. 이때 자신이 정통성이 없는 군주라는 사실에 심한 심적인 고통을 느꼈습니다.

▲드라마 속 선조


그와 동시에 전쟁의 영웅들이 은근히 미웠고 자신의 역할을 빼앗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빼앗아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기막힌 전투력으로 강적 일병의 해군력을 초토화시키는 이순신장군이 반갑기도 했지만 은근히 밉기도 했고, 면천법이나 속오군 편성, 진관체제로 전세를 승리로 이끄는 서애 류성룡이 은근히 미웠습니다. 그리고 전라도의 탁월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도 미운 털이었습니다.

 

▲육전의 영웅 김덕령


그들은 자신을 전면에 내세워 모든 전공을 군왕의 공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전법으로 일군을 격파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결과적으로 군왕이 누릴 수 있는 백성들의 하늘같은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이 질투가 났습니다. 선조는 이순신 뿐만아니라, 육전의 영웅 김덕령을 이몽학의 역모에 엮어 사형에 처해 버렸습니다. 이런 전쟁 영웅제거의 심리는 선조의 제왕으로서의 정통성 미비라는 심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류성룡과 이순신 등이 속한 남인의 정적인 서인쪽으로 기웃거리며 그들의 말을 속에 담았고, 전쟁이 끝날 무렵 서애 류성룡을 격렬하게 탄핵한 남이공 등 서인들의 공격에 귀를 기울여, 서애를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전후 공신 선발에서 이순신과 류성룡을 2등 공신에 넣었고 자신을 의주까지 호종한 도승지 이항복과 명의 군사를 참전케하는데 공을 세웠다고 정근수를 일등공신에 넣었습니다. 이순신의 전사가 보고되었을 때도 선조는 슬퍼하지 않았고 병은 전장에서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4. 명나라 황제의 존경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명나라에서도 당시에 귀빈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전한후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이순신이라는 외국장수에게 이례적으로 큰 벼슬을 하사했습니다.

대명 수군도독 (大明 水軍都督) 이것은 명나라의 벼슬직위상 정1품에 해당합니다. 이는 명나라 최고 수군 사령관으로 내려왔던 진린, 명나라 유격장 마귀,유정 보다도 이순신이 훨씬 높은 직위에 속합니다.

▲충렬사에 전시된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도독인


진린은 이순신을 이야(李爺) 혹은 노야(老爺)라는 존칭을 써 불렀는데 여기서 야(爺)는 아버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조선에서는 국왕정도가 되야 명나라 품계 상 정1품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는 명나라에서는 이순신은 조선국왕의 직위가 동급이였다는 소리입니다. 참고로 통영 충렬사에는 당시 만력제가 하사했던 8개의 하사품이 전시되어있고 이순신의 명나라 품계를 증명할 도독인도 있습니다. 명나라가 얼마나 이순신을 큰 인재로 보았는 지 알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명나라에서는 이순신을 자국으로 모시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선조의 입장에서는 일개의 장군이 백성들은 물론이고 명나라 황제마저 자신보다 인정 받고 칭송하니 시기하며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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