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칭기즈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황제국을

건설한 정복의 신이며

 

나폴레옹 또한 현대전까지

영향을 끼친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군사 전략가,

유럽을 지배한 황제입니다.

 

 

오늘은 이 두명의 전설이

갖고 있는 공통점 5가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당시 알아주지 않았던 변경 출신

 

칭기즈 칸은 오늘날 몽골의 헨티 아이막에

 흐르는 오논 강 유역에서 몽골족의

 한 갈래인 키야트 보르지긴

 씨족의 씨족장 예수게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을

 데릴사위로 보낸 뒤 홀로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 족의 적대적인 부족장들에게

 독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테무진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친척들과

씨족 사람들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사관학교에서 우스꽝스러운 코르시카

사투리를 쓰는 시골뜨기로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동기들에게도 죄다 무시당했는데

 유일하게 동기생에서 브리엔이라는

학생이 그와 친하게 지냈고,

이 인연으로 브리엔은 

 나폴레옹의 부관이 됩니다.

 

 

 

2. 혼란기 수습에 대한 공로

 

칭기즈 칸은 아버지의 원수인 북부

몽골부족인 타타르족을 분쇄시키고

몽골 각지의 부족들을 차례차례 제압하여

몽골인들을 통합했습니다.

 

이후 위대한 왕이란 뜻으로

칭기즈 칸으로 불리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기에

포병장교로 근무하여 혁명군의 승리로

이끈 공로로서 제1공화국의 제1통령으로 추대되며

이후 압도적인 시민들의 지지로 황제가 됩니다.

 

 

 

3. 역사상 길이 남을 전략 전술 전문가

 

몽골군이 사용한 전술은 스텝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술이었지만,

그들이 처음으로 대규모 정규군의

 작전개념으로 적용시켰습니다.

 

이렇게 진화된 전술과 전략덕분에

방대한 지역을 마구잡이로 정복해나가지 않고

 여러 전선에 걸쳐 단계별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기술이 점차 조직화되면서

 몽골군도 부족전사에서 정규군으로 진화합니다.

 

그들의 전술은 개별 전사의 뛰어난 활솜씨와

 기동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였습니다.

 

 

나폴레옹 그의 전술적 능력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것이었고,

다른 나라들은 그의 용병술을 모방하기 바빴습니다.

 

군재 하나만은 역대 최고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던

 그를 잡기 위해, 프랑스를 제외한 전 유럽의 강국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스페인, 스웨덴, 러시아 등)들은

 7차례에 걸친 동맹(대프랑스 동맹)을 해야만 했습니다.

 

포병장교 출신이지만, 나폴레옹의 전술은

포병/기병/보병의 조화와 협동을 이용한 것으로

 포병이 먼저 공격하고, 기병이 휩쓸고,

그리고 보병이 공격하는 형태를 이루어

 병과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대육군은

 당시 유럽에서 당해낼 장군이

어디에도 없었고, 나폴레옹의 적들도 인정했습니다.

 

 

 

4. 잔인한 손속

 

 ◆칭기즈 칸의 경우 간단히 말해서

 적에게는 무자비했으나

자신의 백성들에겐 대단히 자비로웠습니다.


 한 번 폭발하거나 필요하다고 여기면

갈아버릴 땐 한 번에

 갈아버리는 인물이었고

 그가 두 번 이상 직접 침공한

 나라는 금나라 정도였습니다.

 

 반란이 있을 것 같으면

아예 도시를 엎어버렸기 때문에

반란 가능성도 최대한 줄였습니다.

항복해서 한 번 용서해주었더라도

반란을 일으키면 다 사살했습니다.

 

나폴레옹도 잔인한 손속이 유명한데

국내서는 나폴레옹의 학살이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마드리드에서의 학살 등등의

전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5. 인재 중심

 

칭기즈 칸은 세계적으로 악명을 뿌린 만큼

 알아서 항복해준 이들을 상대로는

행정관을 파견하는 정도에서

 그대로 살게 해주었고,

 

 점령지에서 기술자 고용을 통해

 공성전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주력부대가 몽골인이

아닌 투르크족이 많아지는 등

능력위주로 인력을 뽑았습니다.

 

 

나폴레옹의 경우도 당시 유럽 전역에

 강력히 자리잡던 귀족주의가

아닌 평민이라도 장교로 승징하는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인재를 뽑았습니다.


평민만이 아니라 이집트 원정 때에

자신들을 상대로 싸웠던 현지의

맘루크들을 인상 깊게 봐,

그들만으로 구성된 맘루크 부대도 구성했습니다.

 

관련글 - "정복의 신" 칭기즈칸의 몽골군 6가지 전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