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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칭기즈칸의 유일한 라이벌이자 의형제, 유일하게 칭기즈칸을 몰아붙인 당시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 자무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던 호라즘 왕조도 금나라도 칭기즈 칸 앞에서는 모두 분쇄 당했습니다.

하지만 자무카는 칭기즈칸을 생사의 갈림길로 밀어부친 유일한 지도자였습니다.

원래 칭기즈칸과 자무카는 의형제를 맺은, 그것도 세번에 걸쳐서 맺은 맹우였습니다.

실제 원조비사의 기록에서도 칭기즈칸과 자무카는 적으로 만나는 상황에서도 항상 서로를 형제로 부르고 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적의 입장일지언정  인간적으로 그들은 최후까지 서로를 형제로서 사랑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칭기즈 칸이 아내 보르테를 납치 당했을 때 함께 메르키트족을  쳐서 되찾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이 자무카의 동생을 죽인 일비롯하여 몽골 고원의 패권을 둘러싸고 '구르 칸'의 자리에 즉위하여 결국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칭기즈 칸에게 적대하던 부족들을 규합하여 대항했으며, 수 차례의 격전 끝에 초반에는 자무카가 우위에 있었습니다.

첫 전투였던 13익 전투(자무카와 칭기즈 칸 본인들의 직속세력을 포함해 모인 연합이 각각 13 쿠이텐(유목민 부족 진영)으로

13 vs 13 의 싸움이라 13익 전투라 불립니다.)에선 이긴 정도가 아니라 당시 초원의 일반적인 전투로 몰아붙였고 칭기즈칸은 이때

목숨을 잃을뻔 했습니다. 하지만 승전 후 정치적인 실수저질러 칭기즈 칸이 재기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자무카는 결국 패배하여 도망다니다 칭기즈 칸이 몽골의 패권을 거머쥘 즈음에 부하의 배반으로 생포됩니다.

칭기즈 칸은 어릴적 맹우였던 그를 회유하려고 2인자 자리까지 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자무카는 이를 깨끗이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전승에서든 기록에서든 자신을 배신하고 적대한 인물은 살려두지 않은 칭기즈 칸이 유일하게 자신과 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기는 커녕 회유하려 한 인물이니 칭기즈 칸이 자무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군사지도자로서의 실력 및 휘하 세력은 칭기즈 칸보다 우월했는데, 몽골제국의 기본적인 무기체제(갑옷의 모양 등)는 자무카의 것을 거의 그대로 도입했습니다. 몽골군의 악명을 세계에 떨치게 한 심리전 역시 자무카가 칭기스 칸을 상대로 써온 것입니다. 이외에도 자무카의 먼치킨적인 군사적 역량은 둘의 마지막 회전인 차키르마우트 전투 이전까지 만화 주인공과 같은 수준으로 칭기스 칸을 위협합니다. 하지만 13익 전투 때 칭기즈 칸 편에 섰던 치노스족의 모든 남자들을 삶아죽인 것으로 인해 지지도를 크게 잃었습니다.

자무카가 칭기스칸을 뛰어넘는 평가를 받는 칭기스 칸과의 세번째 승부인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그는 케레이트 족의 호구수장 옹칸으로 하여금 세력을 키워가는 칭기스 칸을 경계하게 하여 배신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의 애초의 목적은 자신의 형제이자 일생의 라이벌인 칭기스 칸이 옹칸이 아닌, 자신에게 패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옹칸으로부터 연합군의 전권을 가져온 그는 케레이트 군대를 4겹으로 배치하여 깨지기 쉬운 포진을 구성합니다. 이후 그는 칭기스 칸 측에 옹칸의 포진을 알려주며, 이를 격파하기 위해 망구드-오로오드 족을 전위로 한 돌격전을 제안합니다. 이때 자무카는 칭기스 칸에게 전하는 메세지의 말미에 "너는 이미 날 이긴 적이 있다. 형제여, 이 시련을 넘어서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칭기스 칸은 자무카의 메시지대로 4겹의 허접한 전위대를 돌격전으로 돌파하는 전술을 구사해 승기를 잡습니다. 그러나 메세지는 애초부터 칭기스 칸 측의 시야를 케레이트 측에 집중시키는 자무카의 포석이었습니다. 케레이트의 진영이 돌파당하자, 자무카의 자다란 군이 돌격전에 매몰된 칭기스 칸 측을 포위하였고, 이 전투에서 칭기스 칸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맙니다. 동시에, 자무카는 자기 전력인 자다란을 온존했습니다. 상대와 아군을 모두 완벽하게 기만하는 작전이였습니다.

위의 설명에서처럼, 뛰어난 전략과 전투 기술로 전쟁에서는 칭기스 칸을 압도했지만, 결국 그를 패배하게 한 것은 정치였습니다. 칭기스 칸과 마찬가지로 초원의 통일이라는 대세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지만, 칭기스 칸이 모든 구성원이 인종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과 기여도로 평가받는 근대적인 사회 체제를 제시한 데에 비해, 본인의 카리스마와, 칭기스 칸의 안티테제라는 측면 외에는 이렇다 할 정치적인 자산은 갖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잔혹함은 앞에서 언급한 치노스 팽형의 경우처럼, 오히려 칭기스 칸 측을 돕는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렇듯 칭기즈 칸 못지않은 전략과 전투 기술, 센스를 갖고 있던 자무카는 결국 정치력의 패배로

의형제이자 라이벌인 칭기즈 칸에 미치치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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