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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재자이자 학살자입니다. 독일을 포함한 전세계의 몇 천만명이 그의 독재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최악의 독재자와 인륙 역사상 최악의 무기 핵무기가 만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오늘은 히틀러가 실제 진행한 핵무기 프로젝트 우라늄 클럽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토한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최초로 우라늄 235 라는 물질의 핵분열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 핵분열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면서 더욱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939년 4월 24일 함부르크 대학의 물리학자 파울 하르테크는 독일 제국 국방성에 핵분열이 군사적 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모두 수용하여, 제국 연구 위원회의 수석 물리학자인 아브라함 에사우는 1939년 4월 29일, 수많은 과학자들을 불러들여 안정적인 핵분열 연쇄반응에 대해 토의하였고 이것이 바로 1차 우라늄 클럽입니다.

 

▲쿠르트 디에브너

2차는 독일군 군수성에서 2차 클럽을 만들었는데 독일의 핵물리학자 쿠르트 디에브너가 주도 했습니다.

이 때 다수의 나치 독일 핵물리학자가 참가하여 핵개발을 시도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시작은 어느 국가보다 빨랐습니다.

▲1938년 오토 한등이 최초 핵분열 현상을 발견한 관측기기

 

과학자들은 '누가 이 핵무기를 먼저 손에 넣느냐에 따라 인류역사가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을 직시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훗날 인류 절멸의 무기로 일컬어지는 핵무기의 과학적 발견과 조우하고 있던것.

과학자들의 눈에는 히틀러가 먼저 가지면 서구 문명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고 봤고, 반면 연합국이 먼저 가지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원자 폭탄의 과학적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벌써 실험하고 있던 나치 과학자들 때문에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은 다급해졌습니다. 원자탄 '이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레오 질라르드는 루즈벨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경제학자 알렉산더 삭스와 함께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만나 독일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우라늄 광산 판매를 중단시켰고 이는 히틀러의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는 신호탄이였습니다.

 

핵무기의 중요성은 미국, 나치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대량의 핵분열 물질을 어떻게 생산하는가" 였습니다. 루즈벨트는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 공개된 나치의 소혐 실험용 원자로

 

반면 히틀러는 계속되는 전쟁과 연패로 인해 우라늄 클럽과 핵폭발에 대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독일에게도 상당한 시설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남부 Haigerloch 에서는 중수를 이용한 소형 실험용 원자로가 건설되었고 노르웨이에는 풍부한 수력발전 에너지를 통해 중수를 생산하였습니다. 심지어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는 상당량의 우라늄이 채광되고 있었으니,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있었습니다.

▲나치의 핵폭탄 개발사업을 방해한 레지스탕스

 

그러나 일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었는데 영국측이 파괴공작, 방해공작 등을 펼치자 더더욱 진전이 없어졌고,

결국 1942년 말, 나치 독일은 모든 기술을 민간에다가 이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히틀러의 핵폭탄과 관련된 흥미로운 루머가 있습니다. 1944년 10월 12일, 나치 독일이 rügen 루젠 섬에서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와 관련된 핵폭발의 사진 자료가 남아있다는 것. 독일의 역사학자 Rainer Karlsch 가 주장하길, Thuringia에서도 핵실험이 이루어져 총 3번의 핵실험이 있었으며, 실험으로 인한 사상자가 700명 정도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근거가 매우 부족하여 거의 설에 가까운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이지만 당시 독일의 상황으로 봐서는 3번씩이나 핵실험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국내의 인력과 자원을 국가를 방어하는데 써야하는데 작동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신병기 개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독재자와 최악의 무기가 만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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