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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1기는 보병 8명에서

 많게는 10명을 상대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효율이 좋은 기병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법입니다.

 

 

 

오늘은 기병 17기에

2천명이 패배한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송나라의 기록인 三朝北盟會編

( 송나라의 서몽신이 간행한 송,금 양국간의

전쟁및 평화교섭에대한 실록)에

 따르면 금나라 기병 17명이 송나라

보병 2천명을 격파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책의 권36,정강(靖康)원년 2월의 기록)

 

이는 승리한 금이 아닌

패배한 송나라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승리자가 멋대로

부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죠,

 

 

 

하북 평원의 자주 지평선위에

금나라 여진족 기병 17명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1126년 음력 2월)

 

그들은 자기 금나라 황제에게 전할

중요한 서신을 갖고 있었고

금이 송나라 수도 개봉을 공격하고

 송과 금 사이에 강화가 맺어진 직후였습니다.

 

 

송나라 장군 이간이 2000명의

보병으로 그들을 막았습니다.

 

기병들은 강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 조정의 밀지를 받은 장군

이간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수적으로 근 120배나 많은

 송나라 군대는 기세가 당당했습니다.

기병들은 뒤로 물러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을 위한

도움닫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달려오던 17명 기병은 좌(5)

중(7) 우(5) 3대로 전개했습니다.

 

쐐기모양으로 돌진하면서 송나라 보병의

 대열 한곳에 화살을 퍼부었는데

수십명이 그 자리에서 전사했습니다.

 

 

어이가 없어 놀란 송군 2000명은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금의 기병은 미친듯이 돌격했습니다.

여기서 송군의 거의 반이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금 17명 기병은 단 1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것은 패전한 북송측의 기록입니다.

 

이 부끄러운 패배앞에서

 송측은 자기 군대가 2000명이

아니라 200명이라고

 얼마든지 조작,

기록 할수도 있었습니다.

 

2천명 이상이였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강화조건(개봉공격건포함)으로

금은 송에게 금500만냥, 은5000만 냥의 지불과

 중산(하북성 정현), 하간(하북성), 그리고 태원(산서성) 등

 3진 20주를 요구하였고 송나라 황제 흠종은

 당면한 위기를 면하기 위해 이를 수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말도 안되는

전투가 가능했을까요?

 

중국 왕조 중 가장 군사력이

약했던 왕조가 송나라입니다.

 

 

송나라군은 수는 많았지만

활같은 원거리 무기가 없었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고

실전경험이 전무한 오합지졸이였습니다.

 

송나라에선 군대는 천민들이나

가는것으로 인식이 되어있었고

 따라서 질적으로 상당히 부족한 군대였습니다.

 

반면 송 보병 2000을 상대한 금 기병 17기는

 사절단과 그 호위병력이기 때문에

모두 잘 훈련된 베테랑이였습니다.

 

또한 기록에 언급되어있듯이 송나라군의

 혼란으로 인해 병력 절반을 잃은것입니다.

 

기병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고

오합지졸이였던 송나라군은

도망치다가 자멸한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금나라 철기병 복원도

 

그리고 기록엔 금 기병이 적을 쫒아 베었단

 말이 없음을 미루어보아

길을 뚫는 목표를 달성한 금 기병은

그대로 본국으로 돌아간것으로 보입니다.

 

"금의 군대는 대국인 요 제국을

단번에 멸망시키고, 특히 금 기병대는

 매우 위력이 빠르고 놀라워 가는 곳마다

 대파하고 함락시키니

과연 그들을 막을 수 있을지...(중략)

 

금 중기병은 위력이 대단하지만

 그 기동성이 중기병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했다.

금 기병대는 말을 모두 갑옷으로 치장하고

 위에 탄 무사 역시 거대한 창을 돌리며

 대단한 창병술로 하루에 2000리를 달린다.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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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몽골구닌 2016.11.26 13:42 신고

    그 금기병도 몽고군에게 처참하게 무너졌죠

  2. 2016.11.26 22:10 신고

    고구려의 후예들 우리와 형제 금나라 몽골은 고구려 말갈

  3. 012 2016.11.27 02:08 신고

    임진왜란 용인전투에서 이광이 이끌던 근왕병 8만이 와끼자까 야스하루 2000명에게 패배한것과 비슷한 전투
    대오도 갖추지않고 훈련도 안된 8만이
    조총소리에 놀라서 도망치다 압살당해서
    패배한 전투랑 비슷함

  4. 던힐 2016.11.27 07:46 신고

    용인전투보단 3백 청기병에게 4만 조선 조총병이 분쇄된 쌍령전투가 더 비슷하다고 봄.

  5. 시국 2016.11.27 10:03 신고

    금을 건국한 태조 아골타의 6대조는 신라가 망할 때 만주로 넘어온 고려출신 김함보라고 금나라 정사인 금사에 자신들이 스스로 기록...그 많은 신라 왕족중 일부로 추정. 국호를 금 즉 김으로 정한 것과도 연관
    금의 발원지 만주는 고구려와 발해가 있던 곳
    금의 기병 그림만 봐도 대번에 고구려 기병과 일치

  6. 멍청한 조씨왕조 2016.11.27 11:55 신고

    송나라 왕의 성씨가 조씨죠, 조씨들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난 예라고 생각합니다. 무예나 군사에 관해서는 무시하고 천시하면서 쓰잘데기 없는 잘난채나 하는 향약이나 의례 같은걸로 고매하고 잘난척 하지만 그속에는 거만과 교만이 있는, 그런데 실제로는 개뿔없는 종자들.... 전형적인 조씨 특징 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벌어진 조씨들 관련 사건사고만 보더라도 느껴집니다. 전형적인 짱개들 특징...
    중국이 언제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서 정복한적이 있나요, 그러면서도 세상의 중심이니 대국이니 개소리나 하고....
    한국의 나라 조씨들도 송나라 왕실의 씨들이라는데 고려때 왔다고 하죠..... 편견일진 모르겠지만 제가 겪은바에 의하면 조씨는 거부감이 드는 존재들 같아요. 남자나 여자나 느끼하게 생긴거 같고....

  7. 으흠 2016.11.27 12:24 신고

    2000명이 다죽었다는건 말이 안되고 17명에 선봉이 무너지면서 전부 흩어진거겠죠.. 뭐 그런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당시 시대의 전투라는게 그러했던 거니까요 예를 들면 고려와 여진(금건국 20년전) 전쟁에서 척준경 장군이 몇안되는 정예를 이끌고 승리한 역사도 있습니다.

  8. 다다익선 2016.11.27 14:12 신고

    당시 송나라 엔 악비라는 무시무시한 장군이.있었죠. 그 장군을 금나라 기병들이 만났더라면 뼈도 못추렸겠죠. 참 훌륭한 장군이었죠. 중국드라마 정충악비를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9. ㅎㅎ 2016.11.27 15:06 신고

    중무장한 기병을 활이나 긴 창이나 갈고리같은게 없는 보병은 잘 단련된 보병이라도 막을 순 없죠.
    기병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돌격해서 뚫고 나간거고요. 가까이 다가가 말할 정도면 기병의 높은 눈위치에서 보병들의 무기 정도는 한눈에 파악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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