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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동학농민운동과 교육계몽운동에 참여했고,

 1919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의정원 의원,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내무총장 겸 노동국 총판, 국무령, 의정원 의원,

 

 

 

국무위원 겸 내무장, 재무장, 군무장을 거쳐

 1940년 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된 인물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사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에 전시된

김구 선생의 어린시절을 묘사한 인형들

 

1.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난산

 

태어날때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의

징조였는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정도로 난산이였습니다.

 

 온갖 의술과 미신처방을 써도 소용없었고,

민간 신앙에 따라

김구의 아버지가 지붕의 올라가

소길마를 쓰고 소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김구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2. 엄청난 개구쟁이

 

어린시절 개구장이었습니다.

 

여러 애들이 곰보라고 놀리자

 식칼을 들고 와서 위협하고,

빨래하는 개울에 물감을 풀어놓고,

 

아버지의 곤방대를 팔고

남의 밭에서 서리하고,

개구쟁이가 아닌 문제아 정도.

그래서 매일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3. 개명

 

구안동김씨의 익원공파이나

떵떵거리는 집안은 아니였고

평민 수준의 가정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년시절 이름은 김창암이었으나

1893년 18살에 동학에 입교하면서

 이름을 김창수로 바꿨고,

 

이후 1912년 37세 때

비로소 김구로 개명했습니다.

 

 

 

 

 

4. 김구 선생이 공부를 시작한 이유

 

어느날 김구의 아버지는 갓을 썼다는이유로

욕을먹고 얻어맞았습니다.

 

이예 분노한 김구는 반드시 아버지를

 갓을 쓰게 해주겠다고 복수를 위해 글

공부를 했으며 근처 마을 이씨,

 

강씨들에게 천대받는 것에 분개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을 할 생각이 있었으나,

 

당시 과거 제도의 부패와 폐단을

보고 그만두었으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

 풍수와 관상을 공부하였습니다.

 

 마의상서를 빌려서 석달동안 독방에서

 공부하였는데 자신의 얼굴을

책의 내용에 대입하여 볼때 아무리 봐도

귀상이 아니고 천격, 빈격,

흉격 뿐이라 하여 좌절하였으나

 

 마의상서 안에 있는 구절 중에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

 

 (얼굴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겨 손자,

 육도, 삼략 등을 읽어

큰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5. 안중근과의 사이

 

 이후 동학에 입문하여

동학군으로 활동했습니다.

 

동학군이 패배한 후에는

 얼마동안 안중근의 아버지인

안태훈의 집에 몸을 숨겼습니다.

 

재밌게도 동학활동 당시 그가 지휘하던

 동학군을 때려잡은 사람은 바로 안태훈이었습니다.

 

덧붙여 나이가 비슷했는데도

 불구하고 안중근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태훈에게 보호받은 건 약 1년 정도인데,

이 때 이후로도 계속 안태훈의

집안과는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6. 무장한 상대를 맨손으로 죽이다

 

통감사략 등의 병서를 독학할 정도로

 소년 시절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던 김구는,

우연히 안악군 치하포에서 변장을 한

 일본군 대위 쯔치다를 만나게 됩니다.

 

 김구는 그가 국모를 시해한

 범인의 일당이라고 생각하고,

이 놈을 죽여 원수를 갚아겠다고

그 자리에서 결심합니다.

 

상대는 칼을 가진 자객이었지만

맨손으로 일본인에게 덤벼들어,

발길로 왜놈의 복장을 차고,

 나는 듯이 쫓아가 쯔치다의

모가지를 밟았습니다.

 

그러나 쯔치다는

일본 민간인으로

밝혀져 사형수가 되었다가

인천감영을 탈옥하여 중국으로 향합니다.

 

 

 

 

 

7. 미국의 평가

 

해방 정국 당시 38선 이남을 장악하던

 미군정에서는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이었던

김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미군정은 김구를 무자비하고

부도덕한 인물이이며

이해하기 힘든 인물로 묘사하였습니다.

 

별명도 난폭하다는 의미의

블랙 타이거로 붙였을 정도.

 

여기에 더해 미군정은 1945년 송진우 암살

당시 그를 송진우의 암살배후로 봤고,

미군정 외에도 미국에서는 그를

송진우의 암살 용의자로 봤습니다.

 

 

 

 

 

8. 건장한 체격

 

외모만 봐서는 온화한 학자풍에,

 앞으로 대한민국의 길을 군사,

경제적 강국이 아닌 문화적 강국으로

 제시하는 등 그냥 지식인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생전의 활동은

 투사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였습니다.

 

당대는 말할것도 없고

현재 기준으로도 체격이 좋습니다.

 

동학 당시 거친 농민군 사이에서

소년이었음에도 접주 역할을 했다는 점,

 

치하포 사건 당시 성인 남성을

제압하여 살해했을 정도였음을 보면

체격만큼 완력도 좋았습니다.

 

 

이승만의 키도 당시 남성 기준으로는

 꽤 큰 편인 약 170cm 정도로 알려졌는데,

 사진 속 이승만과 비교해 보면

김구는 거의 180cm가 

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당시 체감상으로는 대략 190중반의

 장신을 보는 느낌과 흡사했을 것입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에서 꾸준히 1위를 하고 있는

존경 받아도 마땅한 백범 김구 선생의

우리가 몰랐던 8가지 사실에 대해아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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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임채청 2016.11.22 11:44 신고

    진정 이나라에 필요한분... 간사한 이 머시기하고 같이 서있는 시진에서 선생의 호방함이 느껴집니다..

  2. 김성후 2016.11.22 11:54 신고

    우리의 역사는 김구선생님이 서거하신후 부터 잘못 됬습니다
    살아계셨으면 역사를 바로 잡을수 있었으나 그리하지 모한게 대한민국으로는 크나큰 손실입니다

  3. 조선의군 참모병장 2016.11.22 12:46 신고

    쯔치다?
    민간인이 왜 칼을 차고 다닐까??????
    시기상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호신용이라해도
    단검이나 권총이면 모를까
    대놓고 허리에 장도를 두른 인간이 민간인???

    • ??? 2016.12.06 16:39 신고

      걔는 상인이라는게 정설임..실제로 쯔치다가 군인이라고 말하는건 백범일지 하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그 백범일지도 치하포사건이 20년이 지난 후에 쓴 책인데..

  4. 신정현 2016.11.22 12:55 신고

    이승만이 김구선생을 죽였죠. 안두희시켜서. 김구가 살아있으면 장기집권이 어려우니까. 이후 다른 독립군들도 잡아죽였죠.

  5. 명성황후시해 2016.11.23 15:10 신고

    명성황후든 민비든 간에 당시 조선의 국모를 죽이는 일은 국가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되었기에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그 칼은 특정한 인물 암살을 위해 제작되고 문구가 새겨진 칼에 이후에 다시 신사에 봉안될 만큼 중요한 물건이라서 일반인이 우연히 그 칼을 입수해 차고 다녔을 가능성은 내가 어젯밤 거제도 한 초등학교에서 농구하는데 어떤 아자씨가 같이 농구하자 해서 했더니 농구공을 주고 갔는데 그게 이명박일 확률이랑 같음.

  6. 다 말해주세요 2016.11.24 03:35 신고

    독립을 위해 많은 업적을 이루어내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님은 해방후 공산주의를 지지하셨습니다. 당연히 미국에겐 적대적이었을테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승만 대통령과도 대립되는 관계였습니다. 이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습니다.

  7. 봉선화 2016.11.24 22:14 신고

    김구가 임시정부시절에 항일빨찌산 김일성을 만난적 있다

  8. 라라 2016.11.25 03:46 신고

    뛰어난 독립투사로 추앙받는건 맞지만 당시 국제정세와 정치적 감각에는 무딘 사람이 맞다. 분단되느니 차라리 나라 전체가 공산국가가 되는것을 찬성했을수도 있다. 아무튼 당시 김구선생이 남한의 정권을 잡고 좌지우지 않한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9. 무궁화 2016.12.03 04:34 신고

    김구 선생님은 민족주의자였습니다.
    독립을 위해 일본에 저항한 레지스탕트였으며
    강대국에 의해 두동강나는 대한민국을 하나의
    온전한 나라로 독립되길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미국에선 성가신 사람이었을 것이고 남한을 미군정으로 하려면 말 잘듣고 타협잘하는 꼭두각시 지도자(이승만)가 필요했을터. 자기 주장강한 김구 선생님은 미국에 제거대상 이었겠지요.
    모함하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아직도 그들이 모함한 공산주의자니등등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뉴라이트에서 그렇게 모함을 하고 있다지요.

  10. 젖은낙옆 2017.01.08 20:18 신고

    백범김구는 공산주의자에게 총격을 받아 죽을뻔 함.
    그리고 공산주의 혐오함. . 인터넷에 거짓부렁하지 머라. 나 백범일지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