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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소드마스터라고 불리우는

척준경의 업적에 대하여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조선의 초대 국왕이자

보우 마스터라고 불리우는,

한국사 최대의 명장 톱3안에 든다는,

 

반란군, 홍건적, 원나라 군벌,

왜구, 여진족 등 당대의 동아시아에서

싸울 수 있는 적들은 모조리 도륙낸 인간흉기

이성계에 믿을 수 없는

정사 기록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함흥본궁 태조유물. 

태조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활과 화살

 

1.

 

젊었을 때 훗날 정빈 김씨로

추봉되는 이자춘의 첩이자

여종이었던 김씨가 우연히 까마귀 5마리를

보고는 태조에게 활로

쏘아달라고 부탁하였다.

 

태조가 한 번의 활을 쏘아

5마리를 동시에 맞추자,

김씨는 태조에게 절대로 이러한 일을

 아무데에도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편전 복원품

 

2.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高安慰)가

오녀산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

 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하여

 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70명 모두 맞췄다.

 

 이를 보고 고안위는 기겁하여

도망갔으며, 성안의 적군들의 사기가

 떨어져 곧 항복을 하였다.

 

 이것을 보고 주위 여러 성들이

항복하였는데 그 수가 1만 여 호나 되었다.

 

 

 

 

 

▲드라마 속 이성계

 

3.

 

동녕부의 오녀산성을 점령한후,

요동성 전투에서 처명이라는 적장을

 사로잡기 위해서 한발은 투구에,

한발은 허벅지에 맞춘후

 

 "마지막 한발은 니놈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라고

 하자 용맹한 처명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항복한 처명은 이후 이성계 막하에서

 부장으로 활약하여 황산 대첩 때에도 참전.

 

 

 

 

 

 

4.

 

황산대첩 때 왜구 적장 아기발도의

 투구를 활로 맞춰 벗겼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는 왜구와의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곳에

 투구를 놓아두고 세번 쏴 세번 다 맞추어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1보가 대략 1.8m니, 270m 거리를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실력이었던 셈.

 

 

이 정도 사거리는 웬만한 초기 화약병기를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또한 가지고 있던 화살 20개중 17개를 쏘아

모두 맞추었는데 모두 왼쪽 눈초리에

 명중했다고 합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백보(180m)

밖에 있는 배나무를 쏴서 가지에

달려 있는 배를 떨어뜨려 그 배로

 손님을 대접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출처 태조실록

 

 

 

 

▲이성계가 타던 팔준마 중 사자황

 

5.

 

5월, 경상도 원수 우인열(禹仁烈)이 비보하기를,

“나졸(邏卒)들이 말하기를, ‘왜적이 대마도(對馬島)로부터

바다를 뒤덮고 오는데 돛대가

 서로 바라다보인다.’하니, 도와서 싸울 원수(元帥)를

보내 주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이때 왜적이 있는 곳은 가득히 찼으므로,

태조에게 명하여 가서 이를 치게 하였다.

 

 태조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서

적군과 지리산(智異山) 밑에서 싸우는데,

서로의 거리가 2백여 보(步)나 되었다.

 

 적 한 명이 등(背)을 세워 몸을 숙이고 손으로

그 궁둥이를 두드리며 두려움이 없음을

보이면서 욕설을 하므로, 태조가 편전(片箭)을

사용하여 이를 쏘아서 화살 한 개에 넘어뜨렸다.

 

이에 적군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기운이 쑥 빠졌으므로, 곧 크게 이를 부수었다.

 

(중략)

 

 

적군을 냅다 치니,

적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반수 이상이나 되었다.

 

 마침내 남은 적군까지 쳐서 이들을 다 죽였다.

 

태조는 평소에 인심을 얻었고,

또 사졸들이 뛰어나게 날래었으므로, 싸

우면 이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주군(州郡)에서 그를 구름과

무지개처럼 우러러보았다.

 

 

 

 

 

 

▲공민왕

 

6.

 

어느날 신하들이 공민왕 앞에서

활을 내었는데 이성계가 100번을

쏴 다 맞추어 “오늘날의 활쏘기는 다만

이성계(李成桂) 한 사람뿐이다.”

 

원나라에서 활을 잘쏘기로 유명한 찬성사(贊成事)

황상(黃裳)이 이성계와 함께 활을 쏜 적도 있었는데,

족히 수백발을 쏘았다고 한다.

 

 이 때 황상은 50발을 연달아 맞춘 후

맞추기도 하고 못맞추기도 하였으나,

이성계는 (수백 발)전부 다 맞추었다.

 

 

 

 

 

 

 

 

▲당시 여진족

 

7.

 

여진정벌 당시에는 여진기병의

 말의 눈을 쏘아

넘어뜨리기도 했으며

 

온 몸에 갑옷을 입은 장수가 달려오자

투구를 쏘아 맞혔는데,

그 장수가 놀라서 입을 벌리자

입 안으로 화살을 쏘아 죽였다

 

 '1362년 그는 선봉에 서서 말을 탄 채

장수만 골라 쏘는 맹공을 펼쳐 마침내

 홍건적의 괴수 사유(沙劉)와 관선생(關先生)까지

참살하고 수도에 제일 먼저 입성해 탈환하는

 큰 전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

 

 

 

 

 

▲이성계의 의형제이자

무력이 뛰어났던 이지란

 

8.

 

의형제인 이지란을 만났을때

 사냥한 사슴을 가지고 다투다가

서로에게 활을 쏘는 대결을 했는데

이지란의 화살을 모두 피하는 신기를 보였다.

 

여진족과 싸울때도 여진족들의

 화살을 말 위에서 모두 피해냈다고 한다.

 

 

 

 

 

 

 

▲태조가 사용했던 어궁구(御弓具)는

일제강점기까지 보존되었던

흔치 않은 활유물이었으며
사실상 조선 최고의 명궁으로 알려져 있다.

 

9.

 

보통 사람이 쓰는 것보다

훨씬 튼튼한 강궁을 썼는데,

 이자춘이 이 활을 보고 사람이

쓸 물건이 아니라며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이성계가 사용한 전어도

103cm이르는 장검

(사진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관련글 - 고려 척준경의 전설과도 같은 7가지 업적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둥글레차 2016.11.13 18:23 신고

    전설은 부풀려지기 마련.... 그저 세종대왕의 할아버지로 기억해야할듯. 어린 애첩의 꼬마아들을 왕위에 올리고자하는 행위가 정도전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로인하여 가족간의 살육이 벌어진건 늙은 이성계의 노망인듯.. 젊을때처럼 활을 쏘듯 시야가 넓었으면 좋으련만....

  2. 대한 2016.11.13 21:32 신고

    약하네요.

    내알기로는 박에서 나오신분도 있답니더.

  3. 조선 2016.11.14 01:11 신고

    대단하긴 대단하다
    왕재

  4. 이런 점도 있지요 2016.11.14 05:28 신고

    고려 선비들 산에서 못 내려오게하고 산 둘러 싸고
    불 질러 죽인 잔혹성도 알아야 하지요

    저런 업적도 부풀리는 곳 도 좋지만 살육한 것도 알아야 진짜 역사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5. 리귀 2016.11.14 10:04 신고

    이성계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양궁에 입문해서 국가대표선발전에 탈락후 월200에 양궁강사...

  6. ㅎㅎ 2016.11.14 12:27 신고

    역사는 반에반만믿음됩니다 승자입장에서 만들어지는게 역사니까요

  7. 닦분쇄기 2016.11.15 05:22 신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8. 두문불출 2016.11.16 01:16 신고

    이런점도 있지요 님...
    산에서 못 내려오게해서 불을 질렀다는게 두문불출 이야기 하시는거지요? 근데 그거 당시 고려말 선비들이 나오라는걸 안 나온다고 버티다가 죽은거 아닙니까? 못 내려오게해서 죽인게 아니라 본인들이 안 나온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려에는 충신들 이지만 이성계 입장에서는 자신을 따르지않는다면 어쩔수없이 제거해야하는 그런 선비들이죠..그 중에 황희도 있었지만 황희는 나왔고 훗날 정승이 되는것을 보면 회유했지만 그 선비들의 뜻에 의해서 안 나온듯 합니다.

  9. 공민왕 2016.11.16 05:11 신고

    장수는 장수의 길을 걸어야지
    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했는데
    무엇을 잘했다는 건가
    이미 역사는 승자의 것으로 미화가 되었으나
    그래도 쿠테타는 엄준한 심판을 받는다.

    • ??? 2016.11.18 01:47 신고

      조선 초기와 고려의 차이가
      단순히 지배자의 교체라고만 보나요?
      통치이념과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랐죠!

      516이 쿠데타라고 모든 역셩혁명이 죄악은 아니에요
      생각의 관점을 좀 넓히시죠

  10. 거참 2016.11.19 16:15 신고

    그렇게 잘 싸우는 놈이 왜 회군했데?
    역적 북방 오랑케

  11. 이학준 2017.08.27 19:47 신고

    모든 왕조교체는 그때의 시대요구을 기초로하기때문에 합당한것입니다 박정희 그런것들하고는 비교하지마세요

  12. 2018.01.19 12:27 신고

    승자의 기록이나..
    쿠데타하고 몇번이나 거절했지만
    신하들이 찾아와 왕이 되달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위화도회군은 신의 한수죠. 썩은 조정의 간신들이 왕 꼬셔서 나간건데
    그렇게 갔다가 다털리면 고려말 상황 더 심각해지지 않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