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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무려 40여명의 독립운동가로

생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위대한 가문에

대하여 알아봤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세종대왕과 함께 더 불어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반도의 대영웅입니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각 나라별 평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이승만 대통령의 평가

 

이승만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절하 했습니다.

 

이승만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도 비판한 바 있을 정도로

 무력을 사용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성향이었습니다.

 

안중근이 일본의 거물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이렇게 되자, 미국 각종 언론 신문에는

 '한국인들은 잔인한 살인마이며

 무지몽매하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자주 실리곤 하였다.

 

어떤 학생들은 한국인인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 했고,

 교수들은 나를 무서워해서 만나주지 않았다.

 

이승만은 1908년, 친일 외교고문으로

 한일합방을 찬미하고 홍보하는 외교관

 '더럼 스티븐슨'을 처단한 전명운과

 

장인환 의사들 법정 통역을 거부했는데

거부 사유가 자신은 '기독교' 신분이라며

 살인자들을 변호할 생각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출처 - 대통령 기록관>

 

이는 미국인들 여론상황 반응만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법정통역을

거부한 것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찾아오자

 1959년 05월 29일 이승만은

안중근 의사에 헌화하고 참배했습니다.

 

 

 

 

 

2.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

 

박정희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1972년 1월

‘祖國統一 世界平和’(조국통일 세계평화)라는

 휘호를 보냈고,

 

안중근 장군 탄신 100주년이던

1979년 9월 2일에는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를 내려 기념관을 이순신의 현충사에

버금가는 성역(聖域)으로 조성하려고 계획했습니다.

 

 

즉, 안중근을 민족정기의 화신(化身)으로

 추앙하여 이순신과 동격의 위인으로

높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에 爲國獻身軍人本分를

새긴 바위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3. 일본에서의 평가

 

몇몇 일본인들과 일본의 극우 등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이토 히로부미는 예전에는 천 엔 지폐에

 실렸을 정도의 위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몇몇 일본인들은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으므로 한국인들이 안중근 의사를

영웅시 하는걸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우리들도

 이토 히로부미가 탐탁치 않으므로

 별 상관은 없는 이야기.

 

일본의 대중적인 시야는

 90년대까지 그저 '이토 히로부미를

 쏜 테러리스트' 정도라는

 단순한 인식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 증대와 과거사에 대한 일본 좌파들의

각성 촉구를 통해 혁명 지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안중근 평전과 안중근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옥중에서 그의 고귀했던 성품, 대의명분,

 그리고 인성을 본 일본인들은

 안중근을 매우 존경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재판에 관련했었던 검사, 변호사,

그리고 뤼순 감옥의 간수들도

 그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다이린지 사찰에 세워진 안중근의 유묵기념비,

爲國獻身(위국헌신) 軍人本分(군인본분)

 

특이하게도 지금도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에 있는 다이린지라는 사찰에는,

안중근을 존경했던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와

 안중근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습니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보물 제569-23

 

안중근은 옥중에서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헌신함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유묵을 써서 지바에게 주었는데,

지바는 이를 평생 소중히 간직했으며,

1980년에는 한국에 반환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양 평화론 서문

 

또한 그의 재판을 맡았던 일본 판사 히라시는

그가 그의 책(동양평화론)을 완성할 수 있도록

그의 사형일을 재판이 끝나고서

몇달 후에 집행하려고 했으나,

 

도쿄에서의 직접명령으로 인해

 미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2010년, 동경대의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는

 

이토 히로부미의 통치는 한국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강제 합병의 첫 단계로 인식되어

큰 저항심을 일으켰으며, 따라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의 이데올로기를 모르면서

 그를 죽였다고 그를 책망해서는 안된다.

 

라고 발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생각하고 발언하는 망언들을 하고 있습니다.

 

 

 

 

4. 중국에서의 평가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안중근은 저명한 항일 의사로

 중국 인민의 존경을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중국 공인일보는 안중근 의사를

 "아시아 제일의 의로운 협객" 이라며

높게 평가함과 아울러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월 20일,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생기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중국인 내에서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5. 북한에서의 평가

 

북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1970년대 김일성의 지시로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을 단장으로 한

안중근 유해 발굴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발굴은 실패.

 

 

1979년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영화가 제작되었고

1998년 북한 영화로는 최초로 SBS에서

국내에 방영되었으며,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에도

 다시 한 번 방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에 등장하는

김일성 찬양은 당연히도 삭제되어 있습니다.

 

2009년 북한은 신문을 통해,

"안중근은 민족이 기억하는 애국열사이며,

어쩔 수 없이 개인 테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풍운아"라 평가하였습니다.

 

 

 2014년 11월 기준으로 북한에서는

해당 영화가 더는 상영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지도부가 암살 한 번으로

 민족의 영웅이 된 안중근 의사를

 본받는 사람이 나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일본 극우를 제외한

각 나라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칭송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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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d 2016.11.12 21:22 신고

    대한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

  2. ㅎㅎ 2017.08.09 19:26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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