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오늘은 16세기에 만들어진

무려 시한폭탄이자 박격포탄이자

파편탄인 조선의 비밀병기

비격진천뢰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도화선 방식의 지연신관폭탄으로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중에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한 작렬형 포탄입니다.

 

 

쏘기 전에 비진천뢰의 자체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 중완구에 넣어서

 발사하면 500~600보 정도 날아가

땅에 떨어진 후 도화선 끝까지 타들어가

 뇌관에 닿으면 폭발하는 지연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화선이 다 타서 터지면 깨진 탄체(겉껍데기)와

 안에 들어 있는 철편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합니다.

 

 

용도는 위에서 아래로 굴려서 보내거나,

그냥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심지에 불 붙이고 도망가거나

 

일반 박격포탄처럼 날려보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조선의 1회용 소모성 무기였습니다.

 

 

제2차 경주성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위력이 어느정도였냐면

비격진천뢰 한방에 경주성을

 탈환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비격진천뢰가 경주성 안에 떨어지자

 그게 폭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왜병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웬 쇳덩어리가 날아들어왔나 하고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펑! 꽝! 쾅! 터지면서 왜병 수십 명이 몰살당했고

 남은 왜병들은 겁에 질려 성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계사년에 우배선 의병군이 향교의

 일본군을 공격할 때,

 

역시 계사년에 이순신 함대가

웅포 해전에서 육상의 일본군을

 공격할 때 쓰였고 일본군은 두려움에 떨며

귀신폭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유성룡의 《진사록》에서 임진년 10월 기사를

보면 북쪽 지방에도 이미 비진천뢰가

 각 지역 무기고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동의 김해 의병대는 계사년 2월 24일

반암의 야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비진천뢰를 운용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본군에게는 철 지옥.

 

 

 

비격진천뢰가 위대한 이유 3가지

 

1. 시한폭탄

 

폭발까지 걸리는 시간은 조절이 가능하며,

도화선을 원하는 길이로 잘라

목곡에 감고, 대나무통 안에 넣은 뒤

탄체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아 도화선 끝부분만

 밖으로 나오게 하면 안에 있는 도화선이

 얼마나 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적진에 떨어질 시점이면

탄체 바깥 부분의 도화선은 다 타서

 없어졌을 것이기에 어디가

 뚜껑인지도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러니 한번 심지에 불을 붙이고

이게 내부로 타들어가면

이제 이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2. 엄청난 위력

 

 역사스페셜 실험결과 위력이 상당해서

발사 후 폭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파편을 뿌리며 폭발했으며,

철편이 바위에 박힐 정도였습니다.

 

대인제압용으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확산탄이였습니다.

 

당시 보병들은 밀집대형을 이루어

전투를 했고, 지금과는 달리 파편탄을

 엄폐(엎드려!)하여 방어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당시 전투의 양상을

 고려하면 상당한 위력이었을 것입니다.

 

 야전이나 공성전이 아닌 고지대 방어전이나

 수성전에서는 불을 붙여 떨어트리거나

그냥 밑으로 굴리기만 해도

적군을 패닉에 빠뜨리는 신병기였습니다.

 

 

3. 비교적 가벼운 무게

 

또한 비격진천뢰를 조사해본 결과

탄체에 기포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폭발시 탄체를 깨뜨리기

 쉽게 하여 파편 효과를 강화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융원필비에는 별대완구용

비격진천뢰 무게가 120근으로 나오는데,

이를 600g으로 환산하면

포탄 무게만 72kg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근이 600g이 아니라

 더 가벼웠고 또한 당시 도량형이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경우도 있었기에

 실제로는 더 가벼웠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관련글 - 태종 이방원이 사랑한 조선의 기밀무기 "편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