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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제일검이라 칭하는 무휼은

아시다시피 허구의 인물입니다.

 

 

뿌리깊은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휼.

 

그 남자다운 기골과 화려한 검술

어마어마한 무력은

 남자들을 매료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흔히 조선제일검이라 칭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실 검보다는 창, 활이

더 주된 무기였습니다.

 

 

 

무과 시험에서도 첫번째는 활을 서서 쏘는 입사

두번째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여러개의 과녁을

맞추는 활쏘기, 세번째는 말을 타고 창술, 창검 겨루기

네번째는 땅에서 창술, 창검술 겨루기 등이 있었고

무경칠서인 7가지 병법서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무과시험을 담은 선은도

 

처음부터 칼이나 도를 겨루는 종목은 없었습니다.

드라마 등에서 칼을 쓰는 장면은

단지 설정이라는 점 이해하시고 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설정이 아닌 조선의 최고 무예가인

무과를 장원급제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무과의 최초 장원급제자 성달생입니다.

조선에서 무과가 처음 생긴 때는 태종 2년 1402년이였고

이때 모든 무과 시험에서 1등으로 통과한

무예의 달인 성달생이 오늘이 주인공입니다.

 

아시다시피 드라마 속 무휼은 태종이나

세종을 지키는 최측근 호위무사이며

왕에게 가장 신뢰를 받는 신하입니다.

 

 

실제 성달생 또한 태종과 세종에게 충성하고

깊은 신뢰를 받은 인물입니다.

 

 처음에 태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한 번 보고 심히 사랑하여서 항상 일컫기를,

‘호남아(好男兒)라’ 하였다.

 

 이때부터 남달리 대우를 받았고 태종이 세자[東宮]로

 책봉 되었을 때에 왕에게 아뢰어

호군(護軍)으로 뛰어 제수하였다.

 

임오년에 나라에서 처음으로 무과(武科)를

설치하였는데, 달생이 제1등으로 뽑혀

대호군에 임명되고,

나가서 흥덕진 병마사(興德鎭兵馬使)가 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 보물로 지정된 성달생이

 필사한 ‘묘법연화경 권4~7’

 

또한

 

오직 “卿은 風姿가 크고 건장(健壯)하며

 기자(器宇)가 너그러웠도다.

당시의 호걸로 빼어났으니 세상에 드문 기질(氣質)이로다.

 

 재주는 무용(武勇)에 뛰어 났으며 학예(學藝)는

유자(儒者)의 본분을 겸하였도다.

 

두 번이나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출세하였도다.

선왕(先王-昭考)을 공경히 섬기어서

 특별한 은총(恩寵)을 입었으며 내가 즉위(卽位)한 뒤에

 권애(眷愛)가 더욱 깊었도다.

외방(外方)으로 여러 번 나갔으매

징청(澄淸)함이 또한 여러 번 이었도다.

 

▲ 세종이 남겨 비석으로 옮긴 실제 사제문 

 

라고 성달생을 애정하는

세종의 기록이 남겨있습니다.

 

1407년에는 흥덕진 병마사로서

그 곳에 침입한 왜구를 박살내었고

1410년 무과중시에서 다시 판예빈시사로

승진하였으며 그 뒤 웅무시위사첨절제사,

 판성 주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5년 후에는 경성절제사로 파견되어

뛰어난 무예로써 야인 위무에 공헌하고

다음해 중군동지총제까지 되었습니다.

 

 

 

성달생은 능숙한 무예로 북변의 진수와

시위에 공헌함이 많았고 필법에도 뛰어난

문무를 겸비한 왕을 지키는 한명의 호위무사.

태종과 세종이 사랑한 신하였습니다.

 

참고문헌 - 고려사, 태종실록, 세종실록, 국조인물고

 

 

▲ 양혜공 성달생의 실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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